지난해 8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 박 아무개씨(사망 당시 22세)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에 박람회를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박씨는 고문을 당한 끝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박씨를 고문·살해한 혐의로 중국인 리 씨를 포함한 4명이 체포됐고, 박씨의 대학 선배 홍 아무개씨(26)와 공범 이 아무개씨(22)도 체포됐다.
대학 선배 홍씨는 “캄보디아에 가서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라며 박씨를 캄보디아로 유인한 인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홍씨가 처음부터 ‘통장 누르기(대포통장에서 몰래 돈을 빼 가로채는 방식)’를 계획해 박씨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씨는 재판에서 캄보디아로 박씨를 유인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돈이 필요하다는 박씨에게 작업대출(허위 서류로 금융기관을 속여 대출받는 방식)을 하는 팀장을 소개했을 뿐이며, 팀장 지시로 박씨가 캄보디아에 가려 하자 오히려 말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범 이씨(팀장으로 추정)는 피해자 박씨가 홍씨에게 돈을 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씨와 이씨의 공모 관계는 재판을 통해 판단될 사안이지만, 박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캄보디아 대학생 고문 사망사건 이후, 이재명 정부는 초국가범죄 특별대응본부를 설치했다.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범죄에 가담한 이들을 국내로 송환하는 작업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송환된 이들은 대부분 피싱 사기 범죄 조직에 가입·활동하며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리딩방, 노쇼 사기 등 각종 피싱 범행(일상적으로는 ‘보이스피싱’으로 통칭된다)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특이한 점은 송환된 이들 가운데 약 85%가 20~30대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학자금 대출, 투자 실패 등 경제적 압박을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유혹에 빠져 캄보디아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검사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건 첫 재판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는 피해자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경제적 살인과 같다”라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피고인 상당수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할 경우, 범죄 조직의 말단인 현금 전달책이나 인출책조차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해당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채용 과정의 비정상성, 보수의 이례성, 수상한 업무 방식 등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이스피싱은 개인이 혼자 저지르는 사기가 아니라 조직적 범죄다. 다만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범죄에 가담한 개인이 자신의 역할이 전체 범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범죄 조직은 총책, 관리책, 모집책, 유인책·콜센터, 현금 인출·수거·전달책 등으로 위계화돼 있으며, 총책으로 갈수록 형량이 무거워진다.
문제는 머리에 해당하는 총책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꼬리에 해당하는 현금 인출책만 검거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위 조직원들은 해외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지에서 활동하던 관리책과 유인책들이 잇따라 송환되면서 총책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대응한다”라며 초국가 범죄에 강경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처벌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아
사기 범죄, 특히 보이스피싱은 ‘경제적 살인’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피해자 개인뿐 아니라 가정 전체가 붕괴된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에는 자신을 속인 가해자보다 스스로를 더 원망하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조직원 대다수가 2030 청년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기다려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를 떠나서라도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왜곡된 박탈감을 보여준다. 수사·처벌과 함께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부디 근본적인 해법이 제시돼 제2의 캄보디아 대학생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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